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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사노동에도 ‘콰이어트 퀴팅’을

올여름 MZ세대의 소셜미디어인 틱톡에서 시작된 ‘콰이어트 퀴팅(quiet quitting)’이  전세계적으로 회자하고 있다. 콰이어트 퀴팅이란 회사 일은 딱 할만큼만 하고 추가적인 노력이나 시간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을 주로 말하는 것이지만, 그 해석은 미국에서도 사람마다 약간씩은 다른 것 같다. 다만 콰이어트 퀴팅을 통해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직장의 일과 개인의 생활에 건강한 경계(boundary)를 설정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콰이어트 퀴팅은 아주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늘 얘기해 왔던 일과 삶과의 균형(워라밸)과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일로부터 ‘콰이어트하게(조용히)’ 물러날 수 있는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 즉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에게 콰이어트 퀴팅은 특정 화이트칼라 직장인들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일과 병행해 육아와 가사노동을 해야하는 워킹맘이나 워킹대디들에게 있어서 ‘콰이어트 퀴팅’은 더더욱 그림의 떡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장기적으로 육아 및 가사노동과 일을 조화롭게 병행하기 위해 ‘콰이어트 퀴팅’이라는 건강한 경계를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을 떠나 워킹맘에게 있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찾는 것은 힘든 일 같다. 가사나 육아 노동을 파트너와 공동분담하는 것이 좀더 당연시되어 있는 미국에서조차 양육에 대한 역할 기대는 여성(엄마)에 더 쏟아진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10명중 6명의 워킹맘이 파트너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 있으며, 10명중 7명은 아이들 학업이나 과외활동 지원에 파트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워킹맘들에게 가사노동에서의 콰이어트 퀴팅은 어떤 의미일까?   내 경우 이제 아이가 대학원생이라 일선에 선 워킹맘은 아니지만, 내가 워킹맘이었을때 콰이어트 퀴팅, 아니 ‘노이지 퀴팅’을 한 경험을 얘기해보고 싶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막 들어갔을 때였다.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서 등교시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한 일이다. 잠에서 막 깬 아이를 겨우 세수시키고 식탁 앞에 끌어 앉혀 밥 한 숟가락 떠먹인다. 흐느적대는 아이에게 옷을 입히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겨우 발라놓은 출근길 화장은 이미 땀으로 번들번들거리고 블라우스 등짝은 젖어버린다. 그리고 아이 책가방을 싸면서 알림장에서 빠진 준비물을 발견하곤 드디어 폭발을 한다. 이렇게 20분의 등교 시간은 부정적 기운과의 싸움이다. 출근 전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버린다. 나는 어느날 이 일을 ‘조용히’ 그만두기로 했다. 아침 시간은 나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대신 퇴근 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아침마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20분 아이 등교로부터 퀴팅을 하니 아침 시간이 이제 다 내 시간이 되었다.   7시에 일어나 회사에 가기까지 2시간이 내 시간이었고, 5시에 일어나면 4시간이 온전한 내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에 나는 운동을 했고 공부를 했다. 물론 함께 사시는 ‘이모님’이 계셔서 할 수 있었던 행운도 있었다.   30년의 직장생활에서 보고 배운 것을 정리하고 나누고싶어 올여름에 책을 하나 냈다.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책에서 가장 많이 할애한 부분이 체력관리다. 한창 워킹맘으로 있을 때 함께 커리어를 키워가고 있는 여성 동료들이 남성 동료보다 자신의 체력관리에 시간 할애를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직장인으로서의 역할 이외에 엄마· 딸· 며느리 등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워킹맘인 경우 자기 몸 관리에 시간을 내는 건 아마도 가장 마지막 일일 것이며, 자신의 몸관리에 드는 시간은 가장 먼저 포기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본인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가정에서도, 또 직장에서도 성공적일 수 있다.   물론 워킹맘에게 가사노동으로부터의 콰이어트 퀴팅은 쉽지 않다. 특히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은 현 육아 상황에서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침마다 10분 명상과 같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작은 실행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물론 안다. 워킹맘, 그 어떤 것도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럴 땐 서로가 토닥토닥이다. 정김경숙 /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기고 가사노동 콰이어트 등교 시간 시간 투자 아침 시간

2022-11-07

[기고] 가사노동에도 ‘콰이어트 퀴팅’을

올여름 MZ세대의 소셜미디어인 틱톡에서 시작된 ‘콰이어트 퀴팅(quiet quitting)’이  전세계적으로 회자하고 있다. 콰이어트 퀴팅이란 회사 일은 딱 할만큼만 하고 추가적인 노력이나 시간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을 주로 말하는 것이지만, 그 해석은 미국에서도 사람마다 약간씩은 다른 것 같다. 다만 콰이어트 퀴팅을 통해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직장의 일과 개인의 생활에 건강한 경계(boundary)를 설정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콰이어트 퀴팅은 아주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늘 얘기해 왔던 일과 삶과의 균형(워라밸)과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일로부터 ‘콰이어트하게(조용히)’ 물러날 수 있는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 즉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에게 콰이어트 퀴팅은 특정 화이트칼라 직장인들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일과 병행해 육아와 가사노동을 해야하는 워킹맘이나 워킹대디들에게 있어서 ‘콰이어트 퀴팅’은 더더욱 그림의 떡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장기적으로 육아 및 가사노동과 일을 조화롭게 병행하기 위해 ‘콰이어트 퀴팅’이라는 건강한 경계를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을 떠나 워킹맘에게 있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찾는 것은 힘든 일 같다. 가사나 육아 노동을 파트너와 공동분담하는 것이 좀더 당연시되어 있는 미국에서조차 양육에 대한 역할 기대는 여성(엄마)에 더 쏟아진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10명중 6명의 워킹맘이 파트너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 있으며, 10명중 7명은 아이들 학업이나 과외활동 지원에 파트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워킹맘들에게 가사노동에서의 콰이어트 퀴팅은 어떤 의미일까?   내 경우 이제 아이가 대학원생이라 일선에 선 워킹맘은 아니지만, 내가 워킹맘이었을때 콰이어트 퀴팅, 아니 ‘노이지 퀴팅’을 한 경험을 얘기해보고 싶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막 들어갔을 때였다.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서 등교시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한 일이다. 잠에서 막 깬 아이를 겨우 세수시키고 식탁 앞에 끌어 앉혀 밥 한 숟가락 떠먹인다. 흐느적대는 아이에게 옷을 입히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겨우 발라놓은 출근길 화장은 이미 땀으로 번들번들거리고 블라우스 등짝은 젖어버린다. 그리고 아이 책가방을 싸면서 알림장에서 빠진 준비물을 발견하곤 드디어 폭발을 한다. 이렇게 20분의 등교 시간은 부정적 기운과의 싸움이다. 출근 전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버린다. 나는 어느날 이 일을 ‘조용히’ 그만두기로 했다. 아침 시간은 나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대신 퇴근 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아침마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20분 아이 등교로부터 퀴팅을 하니 아침 시간이 이제 다 내 시간이 되었다.   7시에 일어나 회사에 가기까지 2시간이 내 시간이었고, 5시에 일어나면 4시간이 온전한 내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에 나는 운동을 했고 공부를 했다. 물론 함께 사시는 ‘이모님’이 계셔서 할 수 있었던 행운도 있었다.   30년의 직장생활에서 보고 배운 것을 정리하고 나누고싶어 올여름에 책을 하나 냈다.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책에서 가장 많이 할애한 부분이 체력관리다. 한창 워킹맘으로 있을 때 함께 커리어를 키워가고 있는 여성 동료들이 남성 동료보다 자신의 체력관리에 시간 할애를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직장인으로서의 역할 이외에 엄마· 딸· 며느리 등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워킹맘인 경우 자기 몸 관리에 시간을 내는 건 아마도 가장 마지막 일일 것이며, 자신의 몸관리에 드는 시간은 가장 먼저 포기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본인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가정에서도, 또 직장에서도 성공적일 수 있다.   물론 워킹맘에게 가사노동으로부터의 콰이어트 퀴팅은 쉽지 않다. 특히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은 현 육아 상황에서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침마다 10분 명상과 같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작은 실행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물론 안다. 워킹맘, 그 어떤 것도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럴 땐 서로가 토닥토닥이다. 정김경숙 /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기고 가사노동 콰이어트 등교 시간 시간 투자 아침 시간

2022-11-01

[이 아침에] 어느 날 아침의 특별한 기원

해 질 녘 공원 언덕에 오르면 멀리 롱비치 항구 쪽과 카탈리나 섬이 보이고, 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를 부르며 한국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침이면 어르신들이 체조를 하고 특히 광복절이나 국경일에는 만세 삼창도 한다.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말이 있듯이 이 공원에 오면 처음 뵙는 분들도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공원 트레일을 걷다가 언덕에 올라서 아래를 보는데 잔디 위에 젊은 여인이 누워있었다. 그 시간이면 직장에 나가기 위해 화장을 하거나 가정이 있으면 출근하는 남편이나  아이들과 함께 분주하게 지낼 터인데 왜 저기에 누워있을까? 얇은 모포를 뒤집어쓴 옆에는 바구니가 있고 강아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 바퀴 돌고 다시 내려다보니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다음 날도 그 무렵에 갔을 때 그 여인은 먼저 와서 누워 있었다. ‘아, 너무 힘든 일이 있나 보다.’ 마음속으로 빌었다. ‘여인아, 일단 일어나거라.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면 저 자리를 찾아 하염없이 누워있겠는가? 살다 보면 너무나 억울해서 말이 안 나올 때도 있고,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앉을 때도 있다네. 머리와 가슴을 비우게나 그냥 팔다리만이라도 움직이기를 바라네.’ 마음으로 소리없이 말을 건냈다. ‘앞이 깜깜해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게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현실이 참혹하게 망가졌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바뀐다고 하네.’ 여인이 꿈지럭거리며 돌아눕기를 바라며 간곡하게 빌었다. ‘저기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오시는 어르신들도 끝 모를 벼랑길에서 몇 번이나 구른 적도 있고 모하비 사막을 건너듯 세월을 보내신 분들도 계실 거야. 어서 일어나 차에 시동을 걸고 어디든 다녀보게. 살아가는 일은 무지개를 바라보며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비좁은 길을 지날 때도 있고, 험준한 산길을 끝없이 올라가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아. 그 지나는 길에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서로 섬기며 인정을 나누며 살다 보면 삶이 삭막하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세상 밑바닥에 혼자 누워 있다고 생각하지 말게. 이 공원의 호수와 바람과 나무들도 자네를 보고 있고. 흔히 하는 말로 온 우주는 자네에게 집중해 있다네. 자네는 이 세상의 유일무이의 존재이고,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야. 자네는 아직 너무 젊다네.’     물론 한 여인이 일찍 공원에 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휴식하며 누워서 평범한 아침을 보내고 있는데, 내가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지레 어떤 상황 속으로 여인을 몰아넣고 마음으로 안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평소에 푸른 나무들 아래서 체력을 튼튼히 하고 휴식도 하며 아침 시간을 상쾌하게 보내던 공원에서 어느 날 마음을 졸이며 이런 특별한 기도를 한 적이 있다. 그냥 망상에 젖어서 혼자 펼친 기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권정순 / 전직교사이 아침에 기원 공원 언덕 아침 공원 아침 시간

2022-08-14

[이 아침에] 어느 날 아침의 특별한 기원

해 질 녘 공원 언덕에 오르면 멀리 롱비치 항구 쪽과 카탈리나 섬이 보이고, 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를 부르며 한국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침이면 어르신들이 체조를 하고 특히 광복절이나 국경일에는 만세 삼창도 한다.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말이 있듯이 이 공원에 오면 처음 뵙는 분들도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공원 트레일을 걷다가 언덕에 올라서 아래를 보는데 잔디 위에 젊은 여인이 누워있었다. 그 시간이면 직장에 나가기 위해 화장을 하거나 가정이 있으면 출근하는 남편이나  아이들과 함께 분주하게 지낼 터인데 왜 저기에 누워있을까? 얇은 모포를 뒤집어쓴 옆에는 바구니가 있고 강아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 바퀴 돌고 다시 내려다보니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다음 날도 그 무렵에 갔을 때 그 여인은 먼저 와서 누워 있었다. ‘아, 너무 힘든 일이 있나 보다.’ 마음속으로 빌었다. ‘여인아, 일단 일어나거라.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면 저 자리를 찾아 하염없이 누워있겠는가? 살다 보면 너무나 억울해서 말이 안 나올 때도 있고,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앉을 때도 있다네. 머리와 가슴을 비우게나 그냥 팔다리만이라도 움직이기를 바라네.’ 마음으로 소리없이 말을 건냈다. ‘앞이 깜깜해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게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현실이 참혹하게 망가졌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바뀐다고 하네.’ 여인이 꿈지럭거리며 돌아눕기를 바라며 간곡하게 빌었다. ‘저기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오시는 어르신들도 끝 모를 벼랑길에서 몇 번이나 구른 적도 있고 모하비 사막을 건너듯 세월을 보내신 분들도 계실 거야. 어서 일어나 차에 시동을 걸고 어디든 다녀보게. 살아가는 일은 무지개를 바라보며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비좁은 길을 지날 때도 있고, 험준한 산길을 끝없이 올라가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아. 그 지나는 길에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서로 섬기며 인정을 나누며 살다 보면 삶이 삭막하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세상 밑바닥에 혼자 누워 있다고 생각하지 말게. 이 공원의 호수와 바람과 나무들도 자네를 보고 있고. 흔히 하는 말로 온 우주는 자네에게 집중해 있다네. 자네는 이 세상의 유일무이의 존재이고,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야. 자네는 아직 너무 젊다네.’     물론 한 여인이 일찍 공원에 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휴식하며 누워서 평범한 아침을 보내고 있는데, 내가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지레 어떤 상황 속으로 여인을 몰아넣고 마음으로 안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평소에 푸른 나무들 아래서 체력을 튼튼히 하고 휴식도 하며 아침 시간을 상쾌하게 보내던 공원에서 어느 날 마음을 졸이며 이런 특별한 기도를 한 적이 있다. 그냥 망상에 젖어서 혼자 펼친 기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권정순 / 전직교사이 아침에 기원 공원 언덕 아침 공원 아침 시간

2022-08-07

[삶의 뜨락에서] 신발 끈을 풀다

 하루의 산행을 마치고 야영지에 들어서면 해는 능선 너머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조였던 허리띠를 느슨하게 늘이며 앉을 자리를 찾는다. 아침 시간 출발할 때는 온몸 여기저기를 조이고 묶고 이런저런 도구를 걸치고 그러고 나서 거치른 초목이 우거진 산길을 헤쳐나가기 시작한다. 잠시 쉬는 시간에도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짧은 숨 고르기만으로 지쳐가던 몸을 추스른다. 그렇게 하여 일행과 떨어지지 않게 부지런히 앞으로만 걸어가다 보면 때로는 주변에 괜찮게 펼쳐진 경관을 놓치는 때가 많지만 팽팽하게 땅겨진 근육이 있어 힘든 산길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      해지는 시간 내일을 생각하며 편안함을 만드는 시간이 귀중하다. 걸쳤던 여러 가지 도구들을 풀어 내려놓고 몸을 단단하게 유지하던 단추를 풀고 지펴도 내리고 편안한 호흡으로 저녁을 맞는다. 맨발을 보호하고 힘있게 내딛게 하던 신발에서 그 맨발을 해방하는 시간이다. 본래 맨발로 다니던 것이었으나 어쩌다가 발싸개와 두꺼운 등산화 없이는 숲길을 다닐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들의 습관으로 갑갑해 하던 발이 그나마 자유로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마련된 누울 자리에 몸을 던지면 그때야 내 옆에 내 앞에 내 위를 둘러싸고 있던 자연과 온전히 만날 수 있다. 피곤함이 달콤한 잠속으로 이끌어가는 사이 별빛과 숲과 나무의 풀냄새와 밤공기의 촉촉함이 온몸을 감싸고 돈다. 근심이나 걱정이나 싸움과 경쟁과 같은 우리를 긴장시키던 모든 것들에서 놓여나와 길지 않은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오롯이 소유하는 시간이다.    허락되었던 한 해가 능선 넘어 사라지는 붉은 해와 노을처럼 특별한 여운을 만들며 저물고 있다. 야영지를 찾아드는 듯한 이 끝 무렵의 시간은 우리를 별다른 휴식으로 이끌고 있다. 어쩐지 익숙하고 낯익은 자리로 돌아온 듯한 안도감으로 몸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마치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누구와 비슷한 마음도 일어난다. 혹은 더 과장하면 돌아온 탕아 같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세상살이라는 동네로 나아가 눈앞에 펼쳐지는 여러 모양의 신작로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좋고 나쁜 이야기를 만나고 만들어내며 상처 주고 상처받는 세월을 지내온 뒤에 갖게 되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밑그림이다. 돌아와 앉은 그곳에서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정말 만나야 하는 우리들의 참모습을 찾아내는 자리이다. 거울 속에서 보이는 그때의 모습과 옛집에 돌아와 안식을 만나는 탕아의 모습에서 한 해를 살아낸 우리들의 숨찬 발걸음을 다시 보면 한 해의 산행이 좋은 결말로 다가올 듯하다.      여전히 우리가 살아내야 할 시간은 긴장을 강요하고 있다. 건강을 잡아먹는 병마는 자꾸 모습을 바꾸어가며 달려들고 있고 하루하루 살아내는 길을 찾아내야 하는 강박감은 소리 없이압박하고 있다. 뒤처지지 않아야 하는 달음박질은 잠시도 멈추어 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들녘에 버려진 먹이 한 덩어리에 달려드는 들짐승같이 틈을 주지 않고 들러붙어 걱정이 걱정을 낳는. 두려움이 되어 걱정 없음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살이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도 물러날 기색이 없다. 그러나 많은 보호장구와 도구를 들고서야 안심하던 무사가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무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의 참된 힘을 찾는 짧은 순간 그때의 평온함이 세상을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와 앉아 짐을 내려놓고 조였던 신발 끈을 풀면서 새로운 내일을 바라보는 것이 한 해를 용감하게 지나온 사람의 자세일 것 같다. 신발 끈을 풀어내며 말해본다. “수고했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신발 아침 시간 시간 내일 걱정 없음

20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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